1980년대 운곡저수지 공사로 폐농경지가 된 후 40년 동안 스스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돌아온 원시습지로 곤충과 새, 식물과 동물도 돌아와 850여 종이 넘는 생물의 서식지가 되었고,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4월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노르딕워킹
운곡 람사르습지 생태탐방코스는 짧게는 50분에서 길게는 3시간 30분까지 소요되는 4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용계리 친환경 주차장에서 탐방열차(수달열차)를 갈아타면 운곡저수지를 손쉽게 통과해 운곡습지 생태공원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으로 습지 탐방 트레킹이다. 아래쪽 식물이 태양광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히 간격을 벌린 덱을 따라 오직 새소리만 가득한 숲속을 걷다가 습지를 마주치면 저절로 고개 숙여 물속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한 뼘의 물 안에 수백 가지 생물이 살고 있다.
10km 남짓인 4코스의 경우 마지막 구간에서 500기 이상의 고인돌 군집이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를 통과하게 된다.
물론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루트도 가능한데, 어느 쪽이든 꽤 극적인 경험이다.
고창 생태자원에 대한 소문은 멀리멀리 퍼져서 2013년 고창군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는 환경부 지정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2017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에코 손수건
줄줄이 열거하기에도 숨이 찰 만큼 영광의 타이틀이 많은 이유는 생태자원으로서 운곡습지의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협력해 온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관광 핵심지역은 보존하고, 완충지역은 생태관광에 활용하고, 인근 마을의 경제에는 도움을 주는 시스템에 따라
습지를 둘러싸고 있는 6개의 마을(용계, 독곡, 부귀, 매산, 송암, 호암) 주민들이 모여 주민협의체를 구성했다.
2021년에는 100대 세계지속가능관광지(Green Destination Top 100)에 선정되었고,
UNWTO(세계관광기구)가 뽑은 전 세계 최우수관광마을 44곳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고창군 생태관광마을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왔다.
2015년부터 탐방로 정비, 개울 복원, 생태공원 및 생태놀이터 조성, 생태마을 조성 등
10년 이상 생태관광마을의 기초를 닫았던 협의체는 2022년 ‘고창군생태관광주민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았다.
조합의 주요 사업 목표 중 하나였던 람사르 습지도시 국제 인증도 그해에 성취할 수 있었다.
이은주 코디네이터는 지역 활동가로 일하다 자연생태안내인 교육을 수료한 것을 계기로 조합의 코디네이터가 되었다.
여러 마을이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의사결정을 거친다는 것. 마을마다 사정이 다르니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어느 곳보다 중요하다.
반딧불이 풀벌레 야행, 운곡습지학교, 생태고원 노르딕워킹, 용계마을 찻자리체험, 용계마을 운곡습지 깃대종 떡 만들기 체험, 오감만족 동행, 에코보자기 체험 등 마을마다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니 조율할 것도 6배다.
조합으로 함께 움직일 때도 많다. 오베이골 토요장터, 생태밥상, 습지생태교육, 마을할머니 해설사, 반딧불이 여행 등 다양한 생태 관련 프로그램이 하나의 바퀴이라면, 사진 공모전, 사진 전시회, 습지 방문 인증 SNS 이벤트 등 운곡습지의 홍보가 또 다른 바퀴가 되어 1년 내내 분주하다.
코디네이터가 된 후 그녀는 직업병이 생겼다.
“치과에 일하면 사람들 치아만 보이잖아요. 지금은 어딜 가도 나무, 생물, 곤충, 꽃만 보여요.
그만큼 자연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겠죠. 이런 자연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병의 증상은 애틋한 마음이다.
11월인데 철쭉과 국화가 함께 피어있는 장면, 한 겨울에 피어난 개나리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제철이 아닐 때 꽃피운 식물은 시들시들 앓다가 죽어버리고 만다. 내일의 아이들에게 전해 줄 것이 없을까 봐 조바심이 난다.
생태밥상
운곡습지의 생태관광 프로그램은 환경교육과 체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떡 만들기 체험에서도 떡이 익는 동안 꼭 교육 시간을 갖는다.
습지학교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방문하지 못하면 타지까지 찾아가는 방식의 습지학교 수업이다.
조합의 활동 범위도 마을을 떠나 군 전체로 넓어지고 있다.
고창은 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람사르 습지도시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자연의 회복력을 돕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논둑 복원지를 보강해 주자 빠져나가는 유출수가 줄었고, 덕분에 서식하는 수서곤충과 수서생물이 증가했다.
민관의 노력 덕분에 생물다양성을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창은 인구 소멸 지역에 속하게 됐다.
생태관광마을 사업의 초창기에 열정을 쏟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활동했던 어르신들의 부고가 날아올 때마다 어깨가 처진다.
꽃이 지는 것도 아픈데, 사람이야 오죽할까.
원래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던 이은주 코디네이터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보인다.
주민들과 일하면서 사람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고창은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어요. 파헤치는 것도, 지키는 것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니까요.
무엇을 하든 분명한 것은 사람이 있어야 사람이 온다는 거예요.
생태관광은 결국은 사람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있어야 길이 열려요.”
고창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어서 고창의 습지와 생태에 대해서 잘 몰랐고, 사람 속에 있어서 사람에 대해서도 무심했던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