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딧불이와 농부의 아들이 돌아오는 곳
광주 무등산 평촌명품마을
무등산평촌마을영농조합법인
박태규 생태관광국장, 공은주 운영위원
남도의 대표 예향 광주는 애잔함 속에 피어난 예술의 도시다.
대한민국 비엔날레의 시초인 광주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이 도시가 가는 길은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거두면 여전히 광주(광주)는 푸른 들판에 내린 빛에서 결실을 거두는 농부들의 땅이다.
그 원형인 듯 마을영농조합을 중심으로 탄탄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평촌명품마을’을 찾아 무등산을 넘었다.
광주 도심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산 너머 마을 평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2013년 무등산 국립공원명품마을로 선정되어 4개(동림마을, 우성마을, 담안마을, 닭뫼마을) 마을이 모여
‘평촌마을’을 이루었을 때 등급이 없는 산, 무등산의 정신을 이름에 담은 것이다.
100여 명의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이 중 80%가 주민협의체에 참가하고 있을 정도로 주민주도형 생태마을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평촌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자 생태자원은 평모뜰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여느 경관 명소 못지않다.
주민의 3분의 2가 농사를 짓는데, 평모뜰의 친환경농업을 가장 최전선에서 지키는 이는 정태석 농부다.
멀리 광주호를 배경으로 한 평모뜰의 논습지에서 긴꼬리투구새우, 풍년새우, 물자라, 중대백로 등이 함께 살아간다.
평모뜰을 가르며 흐르는 풍암천은 반딧불이, 다슬기, 무등산의 깃대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친환경 생태자원뿐만 아니라 문화자원도 갖추고 있다.
왕실과 관청에 납품되었던 무등산분청사기의 전통을 잇는 평촌도예공방, 평촌의 자연과 철학을 화폭에 담는 생태화가들도 마을의 일원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개발의 수혜를 포기하고 생태관광의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농촌이 처한 고령화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30년 전에도 지금의 택시비를 내야 했다’고 토로할 정도로 교통까지 어려웠다.
게다가 개발제한구역, 문화재보호구역이라는 제약과 광역시 속한 농촌동이라는 소외까지,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었다.
마을의 무등산국립공원 편입(2013년)을 두고 크게 갈라졌었던 주민 공동체는
환경부의 생태마을 지정(2015년)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고비를 넘었다.
하지만 마을은 더 먼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결정적으로 갈등 해소의 열쇠가 되어준 것은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장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낸 학교는 또 다른 방식으로 깨달음을 주었다.


충효분교는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고, 평촌에는 새로운 학교가 늘었다.
다양한 생태관광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평촌 생태학교와 평촌 생태평화 예술학교다.
생태학교는 논습지 탐방(무등 평모뜰 논에서 놀자), 무등산 숲 탐방(숲은 최고의 놀이터), 풍암천 관찰(우리는 물이 좋아요) 등을
진행하고 10명의 마을주민해설사가 마을의 이야기를 녹인다.
평촌 생태평화 예술학교에서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모아서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음악회도 개최한다.
마을생태밥상도 맛으로 소문이 나서 예약 손님이 많은 편이다.
김은희 주민과 장인자 주민이 평모뜰에서 꺼낸 먹거리에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요리한다.
무등산 분청사기 가마터 발굴지에서 멀지 않은 평촌 도예공방에서는 이은석 도예가가 체험을 이끈다.

평촌마을이 난관과 어려움을 넘을 수 있었던 해법은 마을의 역사와 사람, 일상과 자연을 기록해 온 아카이빙이었다.
마을 부녀회원들이 모여 아무렇게나 마을 지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충효분교 아이들이 마을 여행자, 꼬마 시인, 마을 탐험대가 되는 프로그램 등을 시도하다 2016년에는 광주광역시 마을교육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적은 예산이라도 부지런히 당겨서 ‘할미꽃 신부 하비 사랑’, ‘평촌마을어학당’, ‘평촌아리랑’ 등
노년의 주민층을 대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이야기로 남길 수 있는 공동체 사업을 꾸준히 마련해 왔다.
“누군가에게 마을을 소개하는 것은 내 삶을 소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라는 마을해설사들의 신조는 오래 퇴적된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을의 생태관광은 함께 먹고(가마솥 밥 여는 날), 산책 하고(평촌 가을밤마실), 체류하는(반짝반짝 밤마실 댕기자) 방식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마을 특산품을 파는 반디마켓과 민박도 갖추었다. 방문객이 늘자, 수익과 일자리가 함께 늘었다.

박태규 생태관광국장은 이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공은주 운영위원이 있었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광주극장 영화 간판을 책임졌던 우리 시대 ‘마지막 간판장이’이자 인권과 환경을 다루는 생태화가인 그가 평촌마을로 이주하고,
생태관광국장이 된 것도 모두 30년 넘게 마을을 지켜 온 공은주 운영위원의 공이다.
마을의 일이라는 것이 끝도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고, 또 설득하는 과정일진대,
어느 이야기 하나 허투루 듣지 않는 사람들이 평촌 마을에 살고 있고, 또 모이는 것이다.
이들은 다양한 자리에서 만난다.
생태관광협회 네트워크회의, 자문위원회, 협치위원회, 마을체험단 등의 이름으로 자주 만나고 토론하고 모색한다.
마을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좋은 사례가 있는 곳이라면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다녀왔다.
견학과 교류를 통해 주민들도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평촌은 반딧불이 서식지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
반딧불이는 농약에 매우 민감해서 엄격한 친환경 농법을 고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딧불이 돌아오듯, ‘농부 아버지’의 아들도 끝끝내 평촌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생태관광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남겨 줄 이야기를 모으는 데 힘써 왔던
공은주 운영위원의 말에는 돌아와야 할 자연과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 담겨 있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들이 모여 환하게 밝은 평촌의 빛이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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